전작에 이어 <혼의연>에서 던지신 공동체에 대한 질문은 AI 기술과 만나며 흥미롭게 공명하는 것 같습니다. 공연장은 전통 혼례 제식을 위한 식장으로 연출되고 관객은 '하객'으로서의 역할을 맡으며 '축하'라는 행위를 모의적으로 수행하는 설정은 관객을 수동적인 관찰자로부터 보다 능동적인 위치로 이전시킵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온라인 참여가 또 하나의 추가적인 상호작용의 차원으로 연동하며, 보이는 물리적 세팅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의 영역으로 영입합니다. 즉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메타-인지의 차원이 간단한 연극적 설정에 따라 활성화되고 감각 영역과 메타-인지 영역, 이 두 영역 간의 관계가 작품의 중요한 경험적 장으로 형성되는 전체 구조가 흥미롭게 나타납니다. 그러한 면에서 메타-연극으로서의 요소를 풍부히 지니는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혼례를 치르는 신랑과 신부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물론 AI의 기능을 작동시키기 위한 연극적 설정이기는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사망한 연인과의 영혼 결혼식이라던가 실제적인 용도가 가능하기도 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연극과 현실을 가르는 간극의 잠재적 무화가 픽션에 불과한 무대 상황에 독특한 활기를 분명 불어넣었습니다. 제4의 벽을 넘어 현실 속에서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잠재성이 물론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바로 그러한 순수 '잠재성'으로서의 효력, 즉 실질적인 구현의 경로가 현실화되지는 않고 연극의 틀 안에서 상상적 상태로만 머문다는 사실이 현실과의 직접적인 교류보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비평적 사변을 더욱 활발하게 살려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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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실시간으로 변형되는 AI 이미지가 늘 현실적이거나 이상적인 모습으로 신랑 신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눌하거나 심지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형태로 끊임 없이 왜곡되면서 나름대로의 시각적인 매혹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으로 작용합니다. 초기 영화가 그러했듯 기술의 초기 단계가 주는 자기 지시적인 볼거리("attraction")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혼례라는 전통의 엄중함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며 경련이나 발작을 하는 것과 같은 기이한 변형을 이루는 모습이 불일치의 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초기 AI 모델링 기술의 미흡함에 익숙한 관객으로서는 다소 식상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불규칙적인 형상이기는 하나, 저 개인적으로는, 완벽하게 자연주의적 모사를 해내는 첨단 AI 기술이 갖지 않는 초기 AI 이미지의 언캐니함이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프란시스 베이컨을 연상시키는 추상성이 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슬랩스틱과 바디 호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기묘한 형태로 일그러지는 신체 이미지는 분명 관객의 참여라는 작품의 중요한 조건에 무관하게 조형적 볼거리만으로서도 일종의 가상적 신체 미학으로서 큰 흡입력/파괴력을 지녔다고 봅니다. (물론 관객의 개입이 이 괴팍한 변형의 근거로 작동하기 때문에 시각적 볼거리로서의 매력이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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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기반으로 일시적인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냐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체에 대한 탐색과 사색의 과제를 충분히 다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도리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이나 부정적 조건들을 창출하고 이에 대해 관객들이 인지하고 작품을 체험하는 동안 비평적 사유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단순한 제의적 축복을 넘어 실제 삶의 조건에 대한 통찰과 대응을 동반하는 입체적 영향력을 갖추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분산적 발현은 이 작품을 심도 깊은 사회인류학적인 통찰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I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관객의 예술적 체험에 어떤 변형을 가할 수 있는가는 분명 이 작품의 중요한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주시하게 되는 작품의 특징은 결혼과 제식에 대한 사회인류학적인 문제의식입니다. 작품은 혼례라는 사회적 관습에 대한 일종의 전용으로 펼쳐지니만큼 작품이 이 관습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제안할 수 있다면 AI 등 작품의 다른 부분들 역시 입체적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충분한 잠정적 요소들은 작품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플라스틱 소품들(과일, 꽃 등)은 분명 이 상황의 연극적 기반을 환기시킵니다. 나아가 AI 캐릭터들의 불안전하고 가변적인 외양은 식의 두 '주인공'이자 연극의 주인공이기도 한 신랑 신부의 정체성을 형식적으로 훼손하면서 남편, 부인과 같은 사회적 역할을 맡는다는 것의 의미에 질문을 가할 수 있는 잠재성을 띤다고 봅니다. 이 부분에 좀 더 무게를 실을 수 있다면 단지 AI 기술을 활용하는 융복합 공연으로서의 기능을 훨씬 초과하여 AI 기술 시대에 결혼과 같이 두 개체의 관계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관습적 행위가 어떤 의미를 새롭게 갖게 되는지, 혹은 어떤 의미를 상실하거나 무화하게 되는지를 성찰하게 만드는 메타-연극으로서 빛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즉 결혼을 비롯 확정적 정체성을 요구하는 전통적 장치들의 존재론적 결정성/부동성과 AI 기술이 유연하게 가하는 비결정성/개방성 사이에서 기존의 가치와 인간 관계들이 어떤 변화를 맞게 되는가를 깊숙이 되돌아볼 수 있는 작품으로 거듭날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연극적 장치에 대한 거리두기와 더불어 사회적 장치에 대한 거리두기가 연동한다면 '메타-연극'으로서의 힘이 더욱 강하게 공명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