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준비 동작
  이곳에 오신 당신을 환영(歡迎)합니다. 가운데 의자에 앉거나, 주변을 탐색해 보세요. 사방(四方)에 빛이 보이시나요? 구조물은 등대처럼 주변을 비추고 있습니다. 다소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볼까요. 회전하는 기계음과 함께 그림자가 보이고, 몸 위로 형체가 투영됩니다. 그 형체는 당신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환영(幻影)합니다.

  1. 접속 위에 놓인 접촉들
  퍼포머가 공간을 탐색하며 등장한다. 명확한 몸짓 없이, 퍼포머는 각자의 리듬으로 나타나 서로를 응시하거나 멀어지고, 때로는 관객과의 거리를 가늠한다. 처음에는 시선이 몸에 닿았다 멀어지고, 이어 손끝이 스치고 달아난다. 몸과 몸 사이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며 공간이 전환된다. 이 곳에서 관계는 예기치 않게 형성되거나 흩어진다. 그 관계는 몸과 몸 사이의 관계 또는, 몸-환영의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개별 간의 접촉은 몸과 몸의 마찰, 시선, 제스처, 거리의 감각을 통해 ‘타인’을 인식하고 감각하는 방식이 된다. 나아가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이미지는 늘어진 속도와 중첩된 프레임을 통해 왜곡되는데, 이것은 ‘이미 지나간 몸짓’으로 신체 위에 투영되어 다른 시공간을 만든다. 몸 위에 투영된 이미지는 과거의 동작, 그리고 지금의 움직임과 어긋나며 교차한다. 어긋나버린 접촉이 타자의 시간과 교차하는 감각의 지점으로 작용하듯, 지연된 환경과 교차하는 몸/이미지의 상황 속에서 지금(-여기)의 몸은 다른 시간 속에서 춤을 추는 신체와 접속한다. 이와 같은 지각의 교란은 단순한 시각적 혼란이 아니라, 관람자 자신의 현실 구성을 새롭게 촉발하는 접촉과 접속의 작용이다. 퍼포머와 관객은 접촉과 접속 사이를 유예하며 관계를 맺고, 공간을 배회하는 감각이 어떻게 지연되는지를 천천히 탐색해 나간다.

  2. 접촉 없는 접속, 어긋남을 통한 연결
  이어 퍼포먼스는 전통놀이인 강강술래와 술래잡기의 형식을 빌려, 집단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어긋남을 통해 공동의 연대를 형성한다. 퍼포머는 완벽하게 동기화되지 않은 움직임과 안무로, 서로 다른 속도와 간격을 유지한다. 술래(퍼포머)를 중심으로 하나둘 나선을 그리며 동선을 좁히고, 관객은 종종걸음으로 퍼포머의 손짓과 몸짓에 응한다. 집단적 리듬은 완벽하게 조율되지 못하지만, 이때 각자의 차이는 연결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닌 함께하는 감각을 형성하는 조건이 된다. 속도와 간격, 방향은 매 순간 달라지고, 함께 걷고 뛰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박자가 공존한다. 조율되지 못한 리듬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기보다, ‘함께-하기’라는 연대와 접촉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아가 관객은 참여하는 순간에도 접촉/접속의 연결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느낌을 감각하며, 리듬에서 이탈하거나 어긋나는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공동체적 리듬은 완벽한 동기화가 아닌, 서로의 어긋남이 연결되는 감각 안에서 형성된다.

  3. 현시대의 불안, 멈춰버린 서스펜스
  윤대원은 '접속(connection)'과 '접촉(contact)' 사이의 상태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몸’을 감각하고 인식하는 방식의 전환과 지각에 대한 제기다. 미디어의 확장된 편재성이 물리적 신체 감각을 점차 가상화시키고, 현실과의 이음매를 잇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현실-가상의 경계 안에서 정의할 것인가’, ‘미디어(스크린)를 경유한 몸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 발생하며, 작가는 이를 현시대의 불안과 연결된 감각적 환경으로 읽는다.
  현시대의 불안은 격렬한 서스펜스 사건이나 선명한 위기와 멀다. 도리어 불안은 닿지 않은 몸짓, 반응하지 않는 응시로 지속된다. 접속은 쉬워지고, 접촉은 멀어진다. 어떤 것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로 멈춰 있는 듯한 이 감각을 ‘정지된 서스펜스’라고 불러볼까 한다. 위기의 순간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끝나지도 않았고, 이 지연되고 중첩된 상태가 바로 지금 우리가 감각하는 불안의 증상이다. 조안나 로리(Joanna Lowry)는 영사 이미지가 단순한 재현의 수단이 아닌, 관객의 신체 감각과 심리적 반응을 유도하는 '증상’과도 같이 작동하는 매체라고 말한다.* 윤대원의 퍼포먼스는 바로 이 정지된 긴장, 또는 감각의 지연 상태를 물리적 장치의 중첩을 통해 대면시킨다. 회전하는 프로젝션 장치는 스크린, 신체, 이미지의 순서를 교란하며, 관객을 시간적 중심이 사라진 공간에 놓는다. 이미 ‘지나간 몸’의 영상과 지금 눈앞의 움직임이 교차할 때, 관객은 어떤 실재를 마주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구조가 프로젝션 이미지와 실제 움직임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현현(presentation)한 것을 재현(representation)된 것으로 만들고, 다시 그 역행을 시도한다. 지나버린 과거의 시간이 되감아진 형상과 현실의 움직임 사이 미묘한 진동을 경험하며, 그 진동을 불안의 형식이자, 감각의 증상으로 재구성한다.
  불안정한 감각 환경 속에서, ‘접속‘은 다시 물리적 감각으로 되돌아온다. 프로젝터의 빛은 신체 위에 닿는 순간 발열처럼 작용한다. 그 열기는 감각의 지연, 이미지의 중첩, 현실과 가상의 어긋남이 만들어내는 불안의 징후처럼 피부에 남는다. 열기 속에서 주체와 대상은 고정되지 않는다. 프로젝션의 형상은 나를 비추는 동시에 나를 응시하고, 나의 몸은 타자의 그림자에 겹친 채 흐릿해진다. 접촉의 순간은 그저 맞닿는 행위가 아니라, 나와 타자의 경계를 유예하고 전도하는 감각의 상황이다. 전도된 감각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형상 안에서 움직임을 인식하고, 불분명한 스크린의 경계 속에서 스스로와 접촉하고 접속하게 된다.

  *Joanna Lowry, “Projecting Symptoms,” in Screen/Space: The Projected Image in Contemporary Art, ed. Tamara Trodd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11), 9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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