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원은 자신의 신체와 몸짓을 기록하고 이를 디지털 편집 기술을 통해 변형 및 왜곡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작품 속 윤대원의 몸짓과 신체는 디지털 편집을 통해 만화경적으로 분절되거나 반복되고, 되먹임 되어 증폭되거나, 흑백의 배경 속 강렬한 색채 대비 효과와 어우러져 기이한 풍경을 만든다. 그렇게 특정 행동을 반복하며 디지털 기법을 통해 변주되는 그의 작업은 분열적이며 어지러운 감각을 자아내는데, 이는 (1) ‘단순 시각적 유희 및 현혹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수행적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와 (2) ‘종교적 맥락에서 다소 무거운 의미의 단어들을 작품 제목으로 붙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가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

Quiet Time
  전시 제목 ‘Quiet Time’은 직역으로 조용한 시간으로 번역되지만, 그리스도교적 맥락에서 경건의 시간이자 명상과 묵상의 시간으로 쓰이며 보다 정확히 성서 묵상의 시간으로 쓰인다. 이는 조용한 시간과 장소에서 성서를 읽으며 묵상하는 행위를 말하며 보다 종교적 의미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영적 교제의 시간으로 설명된다. 모태 신앙인이었으나, 현재는 믿지 않는 또는 방황 중일 수 있는 윤대원은 본인의 삶의 궤적에 한 일부를 차지하는 종교적 배경과 경험을 토대로 ‘Quiet Time’을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붙였다.
  신앙이 없음을 고백하는 윤대원은 유년 시절 의례적이며 수행적으로 반복한 종교 경험이 현재의 시점에서 되먹임 되며, 작업 활동을 이어가는 것에 있어 핵심적인 질문이 되고 작품 제작의 내적 동기가 되는 듯 보여진다. 그의 작가 노트에서는 ‘믿음’에 관한 질문들을 주로 찾아볼 수 있는데, 비신앙인의 관점에서 신을 향한 신앙인들이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고 무엇에 근거하는지, 맹목적인 믿음과 숭배, 우상화 등의 현상들에 대한 토막글에서 그러한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러한 사유가 종교 바깥으로 확장되어 사회 문화적 영역에서 작동하는 믿음의 체계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고 말이다.
  그러한 윤대원에게 있어 《 Quiet Time 》은 조용한 성서 묵상의 시간 또는 고요히 이루어지는 신과의 영적 교제가 아닌 비신앙인의 ‘믿음’에 관한 사유 과정 속 혼돈, 불안 등의 모습이 시각화되어 표출되는 시간이자 공간으로 대비되어 작동한다.

수행적이고(遂行, performative), 수행적인(修行, practice asceticism)
  윤대원이 이번 전시에서 공개하는 작품들은 작가 본인의 몸짓을 디지털 기법을 통해 만화경적으로 분열시키거나 되먹임을 통해 시각적 어지러움을 자아내는 특징들을 보인다. 이는 디지털 매체가 대중을 현혹하는 스펙터클 기법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윤대원의 작품은 춤과 같이 의도와 형식을 가진 몸짓 자체이자 특정 행위를 수행하는 몸에 집중하기 위해 디지털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작품 속 윤대원의 몸짓들은 특정한 규칙에 의해 수행되며 반복되나, 수행 과정에서의 흔들리는 몸을 디지털이란 필터를 통해 의도적으로 중첩시킴으로써 몸과 몸짓을 더욱 증폭해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 퍼포먼스, 종교적 의례 행위들이 고도의 집중을 통해 다른 감각적 요소들을 절제하며 관습화된 행위를 정확히 수행하고자 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루어지며, 수행적 행위의 이면이자 내적 고뇌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렇게 몸과 몸짓의 수행적 행위와 디지털 표현에 집중해 온 윤대원은 비신앙인이나 오히려 전통적인 의미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求道者)와 유사한 수행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몸을 통해 표현하는 불안과 혼돈, 분열적 잔상들과 흔적들은 《 Quiet Time 》 전시에 놓여져 관객에게 비일상적인 ‘Quiet Time’ 시공을 만들며, 일상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내밀한 감정을 사유하는 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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